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문단 편집) === 소년 B === * 본명: 오구라 유즈루(小倉 譲) → 카미사쿠 조(神作 譲) * 출생: [[1971년]] [[5월 11일]] (현재 [age(1971-05-11)]세) '''극청회의 부두목이자 피해자를 가장 가혹하게 괴롭힌 인물.'''[* 감금을 하던 중 준코에게 호감을 느껴 그녀를 짝사랑했지만, 어느 날 준코가 도주를 시도하다가 실패했고 이에 광분한 히로시에게 구타를 당하는 등 혼이 났는데 이때부터 그녀를 짝사랑하던 감정은 배신감과 증오심으로 바뀌며 누구보다도 집요하게 준코를 괴롭혔다.] 카미사쿠 조(神作 譲)로 개명.[* 그도 입양되는 형식으로 성을 바꾼 것으로 보이는데 그를 입양한 카미사쿠는 청소년 범죄자들이 반성하고 사회 적응이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의도는 좋았으나 이 극도로 변태적인 사이코패스에겐 소용이 없는 일이다.~~] 1남 1녀 중 둘째. 아버지는 지방 검찰 고위 간부인 1946년생 오구라 아키라, 어머니는 1945년생 오구라 에츠코다. 범행 당시 이미 180cm가 넘었으며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을 때에 190cm의 큰 키와 흉측한 외모, 들끓는 듯한 굉음, 저음의 목소리가 특징이다. 가해자 일행들 중에서도 가장 체격이 컸다. 그 외 신체적 특징은 왼손의 [[다지증|손가락이 6개]]였다고 하며 매우 심한 [[액취증]]이 있었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 [[하키]] 선수로 활동했지만 부상으로 은퇴했다. 중학교 시절 지인은 그가 폭주족 선배인 고등학생 2명과 싸움이 붙었다고 했는데 "얻어맞으면서도 싸움을 멈출 줄 몰랐다"고 할 정도로 호전적이고 집요했으며 폭력적이어서 어디를 가나 싸움을 일으키고 다녔다고 한다. 그의 지인 및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중학생 시절에 손가락으로 튀어나온 못을 박아넣거나 차량 앞유리나 두꺼운 나무판을 주먹으로 단 한 번에 파손시키거나 알루미늄 캔을 한 손으로 찌그러뜨릴 정도로 강골인 [[인간흉기]]이었다고 한다.[* 다만 인간의 손뼈는 매우 섬세하고 약해 평생 복싱으로 주먹을 단련해 온 [[마이크 타이슨]]도 맨손으로 사람을 패다가 주먹이 골절될 정도다. 고속 주행 중 노후 트럭에서 떨어지는 판스프링도 뚫지 못할 정도로 튼튼한 앞유리를 맨손으로 파손시킨다는 것은 과장일 확률이 높다. 아니면 손이 다치니까 시도를 안 할 뿐이거나.][* 차량의 앞유리는 아치형인 데다 옆유리와 두께, 강도 측면에서 비교가 안 되게 두껍고 단단해서 망치로도 깨기 어렵고 중량급의 격투기 선수들조차 맨주먹으로는 깰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배우 조정석 역시 운동을 잘 하고 탄탄한 몸매를 가졌음에도 영화 [[뺑반]] 촬영 당시 차량 앞유리를 골프채로 손쉽게 깨는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로는 20대 가량 가격해야 균열이 생기면서 파손됐다고 한다. 반면 차량 옆유리는 창문 유리나 얇은 나무판, 기껏해야 [[타조알]] 정도라서 건장한 성인 남자라면 일격에 파손되며 중학생이나 여자라고 해도 몇 대 치면 부서진다. 다만 강도 자체는 약해도 날카로워진 유리에 의해 다칠 수는 있다.] 이러한 남다른 강체질 덕분에 그는 자신과 싸운 상대들이 아무리 운동을 많이 하고 몸이 단련된 상대들이라도 주먹이나 발길질 한번에 기절하거나 뼈가 부서졌다고 자랑하고 다녔다고 한다. 이들은 이 사건 당시에도 피해자를 1달 가량 하루 18시간 이상 겁탈할 정도로 체력이 비정상적으로 강했다.[* 상술된 대로 그는 중학생 때 고등학생 폭주족 둘과 시비가 붙어 싸웠지만 일방적으로 맞고 있었는데도 절대 싸움을 멈추지 않을 정도로 깡다구가 세고 맷집이 좋은 인물었는데도 히로시를 잘 따랐다는 것은 히로시가 그만큼 잔인하고 위험한 인물이었다는 걸 입증하는 셈이다.] 이 무렵에도 자전거를 타고 가는 여학생을 쫓아가 덮친다든가, 치마와 속옷을 벗기는 등의 성추행을 해서 보호관찰 대상이 된 적이 있다고 한다. 중학교 2학년 때는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왔다가 어머니가 "걸레 같은 계집"이라고 발언한 것을 시작으로 [[가정폭력]]을 시작했다고 한다. 너무나 격렬한 폭력에 어머니가 가정 재판소에 몇 번이고 상담했을 정도라고 한다.[* 당시 일본의 비행 청소년 중에는 잔악한 [[가정폭력]]을 일삼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다만 B의 어머니도 동정할 필요는 없는 게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면서 아들이 자기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대가를 받은 것에 분노해 "내 아들의 인생이 저 여자 때문에 망했다!"고 '''준코의 묘를 부숴 버리는 충격적인 만행을 저질렀다.''' 공판 당시에는 [[소시오패스|"그래도 놀아줬으면 된 거 아니야?" 라고 유족 앞에서 낄낄거리며 웃기까지 했다.]] 출소한 뒤 이름을 개명하고 중국인 여성과 결혼 후 일본에선 살아가기 힘들 거라는[* 하지만 이미 1999년부터 2001~2002년까지 컴퓨터 관련 업체에 채용된 적이 있다. 2004년 재범 당시 이곳 직원들에 따르면 출소 후에도 깡패처럼 산 모양이고 실제 야쿠자 사무실에도 드나들었다고 한다.] 생각에 중국으로 건너가려 했으나 이혼하면서 실패했다.[* 당시 그 중국인 여성의 부모가 그의 실체를 알고 결혼을 결사반대했는데 중국 공항까지 흉기를 들고 쫓아가서 그녀의 부모를 위협하는 난동을 일으켜 [[중화인민공화국 인민경찰|중국 경찰]]에 체포되기까지 했다. 이들의 범죄가 해외까지도 알려진 셈이다. 하지만 별다른 조치나 처벌은 취해지지 않은 모양.] 성인이 된 후에도 한낮에도 "캬", "우우우"하는 괴성을 지르고 어머니에겐 "맞기 싫으면 내 앞에 있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던 2004년 5월 또 다시 [[아다치구]]에서 자신의 여자를 가로챘다는 이유[* 사실은 자신의 애인과는 어떠한 관계도 없었다.]로 이소노 타카토시라는 사람을 어머니의 스낵바에 감금해 납치, 폭행했다가 체포되었는데 이미 이 사건의 형은 만기됐기에 어떠한 가중 처벌 없이 징역 4년이 선고됐다. 감금 이후 몇 시간에 걸친 폭행을 가한 뒤 피해자를 그냥 풀어줬다고 한다. 그저 피곤하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꺼지라는 듯이 돌려보낸 것. 피해자 이소노에 따르면 가해자는 딱 봐도 180cm 이상은 되어 보이는 신장에 체격이 건장했으며 첫눈에 [[깡패|그런 부류의 인간]]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인상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피해자의 집에도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오고 새벽에 다짜고짜 들어와서 냉장고를 뒤지고 술을 꺼내 그 자리에서 동료들과 밤새도록 술판을 벌인다거나 여자 이야기나 온갖 [[음담패설]]을 내내 늘어놓으면서 과거 이력을 자랑하고 "지갑이 사라졌다"면서 새벽에 찾아와 집안을 뒤집어엎은 적도 있다고 한다. 재판 당시 피해 남성이 그를 마주치는 게 두려워 재판 참석을 거부한 탓에 칸막이를 두고 재판을 진행했다. 이때도 그는 "이 정도는 감금치상이라고 하기도 뭐합니다만"이라고 하면서 너무나 여유로워 보였다고 한다. 피해자는 감금되어 있는 동안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에 그저 영문도 모른 채 용서를 빌어야 했고 살아 있는 게 아닐 만큼 지독하게 오싹했다고 한다. 피해자는 뺨에 손바닥만한 멍이 시커멓게 들었고 턱뼈와 앞니가 부서져 피가 철철 쏟아지는 동안에도 계속 맞았다고 한다. 사건 당시 그는 금고 앞에 서서 야쿠자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금속 배트와 칼로 피해자를 위협하면서 "사람을 1명 죽이는 놈과 10명 죽이는 놈은 다를 게 없다. 나는 사람을 마음대로 구워삶는 여유를 배웠다. 검찰은 나의 노리개니 무슨 짓을 벌려도 풀려날 것이다. 내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알게 해 줄까. 야쿠자를 우습게 알면 어떻게 되는가를 똑똑히 알려준다."고 협박했고 평소 이 사건에 대해 "그 때 후배들을 끌어들인 것도 나고, 내가 진짜 주범이다. 여자를 삭발시키고 떼거지로 패며 강간하면서 비디오를 찍고 했다. 소리지르지 못하도록 턱관절을 탈구시키고 팔을 분지르면 까무러쳤다. 그 땐 너무나 즐거웠다. 하루는 돌아왔는데 몸에 불을 질러도 미동도 없길래, 코에 담배 연기를 피우고 숨을 쉬지 않는 걸 알았다."고 말하면서 웃음을 섞어 가며 자랑했다고 한다. 정말 그가 주범이면 정작 진범에 대해 제대로 된 처벌이 내려지지 않았다는 거나 다름없다.[* [[진실은 저 너머에|아버지가 검찰 고위 간부인 점을 생각하면 그 빽을 이용해서 중형을 피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가 주범이라면 '어떻게 미야노가 주범격으로 기소됐다는 건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사실 재판 당시에도 A는 "나는 준코의 온몸에서 고름과 진물이 쏟아져 나와 더러워진 이후에는 C의 집에 잘 오지 않았고 바깥에서 다른 여자를 납치하거나 강간했다.[* 사건이 진행 중이던 12월경 미야노 히로시가 '''"납치한 지 1달은 된 거 같은데, 온몸이 피투성이에 피고름 때문에 썩은 냄새가 나서 먹을 수도 없게 됐으니 그만 돌려보내자"'''고 말했다. 하지만 "신고할 수 있으니 위험하다"며 미야노 히로시를 말린 오구라 유즈루 때문에 준코는 집에 갈 수 없게 되었다.][* 피해자가 납치되기 17일 전 11월 8일에 19세 여성을 히로시 패거리와 함께 납치했는데 이때 그가 "소년원에서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오오아라이에 가자", "오오아라이의 파도가 높고 거칠다"고 말하면서 으름장을 놔 도망 의지를 상실케 한 뒤 패거리들이 매우 난폭하고 거칠게 집단 강간을 했고 금품을 빼앗은 뒤 나체가 된 여성을 버려두고 도망쳤다고 한다. 이때 피해 여성이 영구장애를 입었다는 말도 있다. 여러모로 그들이 얼마나 악질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준코가 죽고 난 뒤 히로시가 3월 29일 네리마 소년 감별소에서 조사받았던 사건이 이 사건이다.] 그러나 B와 C 등은 이 시기에도 준코를 지독하게 괴롭혔다."고 밝히긴 했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는 A에게 대항할 수 없었기에 따른 것뿐, 우리도 피해자다."라는 망언을 지껄였고 심지어 이게 받아들여진 건지 지나치게 가벼운 형량을 받았다. 애초에 가해자들 중 자기 죄질에 상응하는 형량을 받은 놈은 없지만 말이다. 보스 미야노 히로시가 없을 때는 오구라 유즈루가 두목이었다고 한다. 4년형을 선고받았으니까 만기를 채워도 출소했을 텐데 근황에 대해 알려진 게 없다. 두 번이나 감옥에 다녀왔으니 또 가기 싫으면 웬만해선 밖에 나오지 않고 조용히 살고 있겠지만 나갔거나 일을 하더라도 다른 가해자들처럼 죽을 때까지 평생 욕을 바가지로 먹을 것은 변함없을 것이다. 그의 현재 사진으로 알려진 창문을 닦고 있는 사진은 본인이 아니며 단지 개명 전의 이름인 '오구라 유즈루'의 동명이인이다. 앞서 말했듯 진범은 카미사쿠 조로 개명했으며 해당 사진을 보면 왼손의 손가락이 정상적으로 5개이기 때문에 그의 사진이 마치 범인인 것처럼 와전되는 바람에 동명이인인 당사자는 곤혹을 치렀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